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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oheun99
제목 노아의 위로와 주님의 위로를 붙들라.(창5:28-31, 히4:14-16)
작성일자 2022-12-03
조회수 159

노아의 위로와 주님의 위로를 붙들라.(5:28-31, 4:14-16)

  <아담가인에녹이랏므후야엘므드사엘라멕>: ‘가인의 후예(후손)’를 기록한[가인의 족보].(4:16-24) <아담에노스게난마할랄렐야렛에녹므두셀라라멕노아>: 아벨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주신 셋의 후예(후손)’를 기록한 [셋의 족보].(5:6-31) 창세기 4장에 기록된 가인의 후예(후손)’들과 5장에 기록된 셋의 후예(후손)’들은 서로 유사한 이름들이 많다. 셋의 손자 게난가인, 셋의 증손자 마할랄렐므후야엘, 셋의 4대손 야렛이랏. 셋의 5대손 므두셀라므드사엘, 셋의 7대손 라멕은 가인의 후손 라멕과 동일하다.

  두 족보는 겉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속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가인의 후예(후손) 족보는 살인자 가인으로 시작해서 더 극심한 살인자 라멕으로 끝난다. 반면에 셋의 후예(후손) 족보는 (구원의) ‘다른 씨앗’(세트, שֵׁת)으로 시작해서 위로자’(구원자) 노아(노아흐, נֹחַ)로 이어진다. “가인의 후예가 일으킨 것은 문명사이지만, 셋의 후손이 닦은 터는 구속사다. 가인의 문명사는 죽임의 역사이지만, 셋의 후예가 다진 구속사의 정초는 살림을 향한 구원의 역사다.”(왕대일, [창조신앙의 복음, 창조신앙의 영성], 123.)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있다. ‘크기가 고만고만한 도토리들이 키를 재보지만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세상 삶이, 사람들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 비슷비슷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일면 맞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음도 부인하지 못한다. 겉보기에 고만고만해 보여도 속으로 들어가 보면 크게 다를 수 있다. 폭력으로 죽임에 이르는 삶이 있는가 하면 배려와 사랑으로 생명에 이르는 삶이 있다. 악인이 있는가 하면 의인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착한 사람이 있다. 문제는 그가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삶의 모습이 정해진다. 잘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잘 살아야 한다.

  라멕(라메크, לֶמֶךְ)강한 사람을 의미한다. 사람의 강함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 성적인 문란함과 함께 포악하고 잔인한 삶을 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자기만의 세게에 사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4:19,23-24) 사람의 강함이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 수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람노아를 길러내는 축복의 사람이 된다.(라멕은 노아의 아버지다. 5:28-29) 동일한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극명하게 구별되는 두 사람은 가인이라는 뿌리와 이라는 뿌리가 다름에서 기인한다.(사격에서 0점 조준이 조금만 어긋나도 거리에 비례해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노아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로 인하여) 땅이 저주를 받아 수고로이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위로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는’(6:6) 상황에서 세상을 물청소(홍수심판)’하시려 하는 시대에 노아는 위로자가 되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6:9)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너희를(우리를) 위로하시는하나님(51:3,12/ 40:1-3 참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로하시려고’(4:14-16) 이 땅에 오셨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처럼(2:25-35) 대림절 둘째주일에 <노아의 위로와 주님의 위로>를 붙들자.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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