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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39장1-6절_꿈은날개를달고
작성자 joheun99
작성일자 2020-03-23
조회수 87

‘꿈’은 날개를 달고(창세기 강해 75)

◎성경/ 창39:1-6 ◎찬송/ 542장(2002.12.8. 주일오후/ 좋은교회)

1. 요즈음 중단되었는데, 「성공시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사회에서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인생 비결을 취재하여 방송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사회의 높은 지위를 차지한 사람들도 등장하지만, 사회의 지위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평범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하는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만일 요셉이 사는 시대에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단연 요셉의 이야기가 크게 소개되었을 것입니다.

2. 요셉이 애굽에 이끌려 내려가”(1절a, 창37:36)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다가(?) 미디안 상인으로부터 상품성(?)이 인정받아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보디발의 집에 납품(?, 당시 노예는 ‘움직이는 가축’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되었습니다(1절b). 보디발의 집에 요셉이 들어갈 때 줄에 묶여서 들어갔을까요? 승용차 타고 들어갔을까요?(대체로 전자로 봅니다).

3. 이 상황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마치 ‘코리안 드림’(Korean dream; 선진국-주로 미국-에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자리를 굳힌 인간승리 이야기)을 이룬 눈물겨운 이야기로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 돈을 벌어 본국에서 장사 밑천이라도 잡아보려는 불법 체류자 신분의 외국인 노동자 형편을 헤아려보면 요셉의 형편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불법 체류자’ 신분의 외국인 노동자가 청와대 경호실장 집에서 일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할까요? 어떻게 일하면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주인집(?)에 ‘하늘의 복’이 임하도록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볼 때 요셉의 눈물겨운 삶을 우리가 조금은 헤아려 볼 수 있겠습니다.

요셉, 그는 형들의 집단 시기와 따돌림, 생명의 위협, 부모와의 생이별 등 처절하리만큼 절망감과 상실감, 외로움 등등 그야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무언가 다른 삶’을 분명히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4.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2절, 3절×2, 5절)라는 부분입니다. 요셉의 ‘꿈’에 날개가 달렸습니다. ‘여호와께서’ 날개를 달아 주셨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갈 때에 ‘날개’를 달아주실 때가 있습니다. 이 때 힘차게 비상해야 합니다. “기회를 사는”(세월을 아끼는) 삶(엡5:16)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의 성실함이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확신이 중요합니다.

5. 요셉, 그에게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의 별명은 “형통한 자”(2절)였습니다. 스스로의 착각이 아닙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평가였습니다. 특별히 주인도 이 사실을 인정했습니다(3절)(만화 비디오 「이집트의 왕자Ⅱ」에 보면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모함할 때, 보디발 장군이 요셉을 바로 죽이지 않은 것은 요셉을 인정한 것임을 드러내는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의 선정 ‘좋은 비디오’; 「이집트의 왕자Ⅱ」!!!). ‘형통한(형통케 하는) 사람’ 참으로 좋은 별명입니다.

6. 요셉이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4절) 보디발 가정의 모든 일을 총괄하게 되니, “그 때부터 (더욱)”(5절a) 보디발의 집에 “여호와의 복”이 임합니다(5절c). 하나님께서 “요셉을 위해”(5절b) 하신 일이었습니다. 성도가 가는 길, 삶의 현장에 이런 복이 임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시대에 우리 민족은 요셉 같은 사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내 지위가 높든 낮든 상관하지 않고 ‘ 성실하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사람 말씀입니다. ‘형통’은 하나님의 기회와 인간의 준비가 만나는 곳(강준민)입니다. 1,200만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산다면 분명히 우리 민족은 소망이 있습니다. 앞 길이 밝습니다.

7. 점점 더 인정을 받게 된 요셉은 이제 “식료” 외에는 그 무엇에도 주인의 간섭을 받지 않습니다(6절a). 다시 확인합니다만, 불법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대통령 경호실장 집에서 이만큼 인정받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성실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피눈물(?) 나는 노력이 선행(先行)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하루아침에 인정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늦어져도 인정받을 기회에 당당하게 인정받기 위해 ‘오늘을’ 성실하게, 바르게, 올곧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사람에게 인정받는 날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꿈’에 날개를 달아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8. 본문의 마지막은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6절b)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장점’이 하나님 주신 날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람의 장점’이 유혹의 통로가 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다음 시간을 기대하시지요. <‘꿈’☆은 날개가 꺾이고>정도의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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